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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생의 건망증' - 노요한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1-20 조회 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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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도 유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을 지켜본 바로는 그런 유전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의 건망증은 예전부터 유명하다. “내가 어디 잘 놔뒀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어머니의 되돌림 노래 가사다.

한번은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같이 갔는데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내던 어머니는 차 키를 잊어버렸다고 방방 뛰셨다.
“차 안에 놓았나? 마트에 떨어뜨렸나?” 어머니는 갈팡질팡하다가 혹 키를 주은 사람이 차를 몰고 갈 수 있다며 계산 도중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달려가셨다.
어머니가 얼마나 애절하게 울부짖었는지 뒤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도 빨리 갔다 오시라며 같이 걱정해주었다.
지갑이나 놓고 가실 일이지! 계산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던 나는 물건을 다시 카트에 담고 한쪽 구석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한 십오 분이 지났을까, 그제야 나타난 어머니는 얼굴이 환했다. “찾았어?” “어.” “어디 있었는데?” “내 주머니….”

어머니의 건망증 유전자를 이어받은 건 내가 아니라 동생이다. 동생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개교기념일을 맞아 늦잠을 자고 있는데 방문 밖에서 어머니와 동생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내용인즉, 학교를 가던 동생이 뭔가 꺼림칙해 가방을 열어봤더니 도시락이 없었다는 거. 동생은 왜 도시락을 안 넣어줬냐고 어머니를 쏘아붙였다.
어머니는 도시락을 가져갈 수 있게 신발장 위에 가지런히 놓았는데도 못 보고 그냥 간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 분 더 설전이 오가더니 이내 잠잠해져 난 지각까지 무릎 쓰고 도시락 때문에 다시 돌아온 동생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쯤 어머니가 급히 방으로 들어오시더니 “요한아! 너 지금 당장 요섭이 학교 좀 가봐라! 당장!!!”
어머니의 다급한 외침에 잠이 깬 나는 동생이 등교 도중 질 나쁜 녀석들에게 걸려 돈 뺏기고 구타라도 당한 줄 알았다.

그래서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한테 물었다.
“왜요? 뭔 일 있어요?”
“네 동생이… 네 동생이…”
사태파악이 안돼 눈만 멀뚱거리는 내게 어머니는 동생의 가방을 쥐어줬다.
“도시락만 가져갔어. 이 답답한 녀석이…” 아니 도시락 없어도 되돌아온 녀석이 가방이 없는데 왜 안 돌아왔을까?
그런 의문을 품고 동생의 초등학교로 향했다.

쉬는 시간이면 좋으련만 한참 수업 도중이었다.
복도에서 서성이다가 교과서도 없이 앉아있을 동생이 안쓰러워 살그머니 뒷문을 열었다.
운 좋게 동생은 뒷문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생을 불렀다.
“요섭아, 요섭아.” 갑자기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에 놀라 고갤 돌리는 동생의 두 눈엔 서글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형, 가방이 없어!”
가방을 주고 서둘러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입을 틀어막고 한 없이 웃었다.

그 후에도 동생은 크고 작은 건망증으로 가족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십수 년이 훌쩍 지나 군대를 막 제대한 동생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1년간 호주에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계획을 온 가족 앞에서 발표했다.
매사에 변변치 못한 의욕을 보여줬던 동생인지라 가족들은 1년간 유람하겠다는 소리로 치부했다.
하지만 동생은 시간 날 때마다 대단한 각오를 울부짖어댔고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을 당부했다.

그 일환으로 비자 인터뷰할 때 운동화보다 구두가 더 좋은 인상을 줄 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동생은 내 구두를 차출해 갔다.
내게도 하나뿐인 구두였고, 영세한 애니메이션물 기획사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돈 대신 받은 거라 각별한 구두였다.
게다가 동생은 발볼이 유난히 넓어 신발이 죄다 양옆으로 늘어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안 빌려주려고 했지만 동생은 구두 하나 갖고 쩨쩨하게 군다며 날 쪼잔한 놈으로 만든 후 거침없이 신고 다녔다.

구두는 점점 형태를 잃어가고 내 근심도 점점 늘어가던 어느 날, 정확히 동생이 호주로 떠나기 4일 전의 토요일 저녁이었다.
온 식구가 식사 중에 난데없이 동생은 내가 구두 때문에 자꾸 구박을 해서 맘이 무겁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에! 두 달이 넘도록 늘어나는 구두를 보면서도 불평 한번 못하고 꾹꾹 참고만 있었건만….
녀석은 부모님께 새 신을 얻어낼 요량으로 나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다음 주면 떠날 자식에게 구두가 없다는 소리에 울컥한 아버지는 대뜸 지갑에서 돈을 꺼내 동생에게 쥐어주었다.

능글맞은 동생은 그 길로 가까운 쇼핑센터를 찾아가 구두를 사왔다.
하지만… 다음날 짐 가방을 싸는데 좌우 신발 사이즈가 다르지 않는가!
일요일은 쇼핑센터가 쉬는 날이라 속만 태우다가 월요일 해가 뜨자마자 동생은 부랴부랴 달려가, 매장을 발칵 뒤집어놓고 새 구두로 바꿔왔다.

그날 저녁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동생의 새 구두와 아무렇게나 벗어 뒤집어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내 헌 구두를 발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동안 자신이 신었던 구두를 이렇게 냉대하다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 길로 동생 방으로 들어가 고맙다는 말도 없느냐며 윽박질렀다.

동생은 뭐 그런 거 갖고 성질부리냐며 객쩍은 웃음을 던졌다.
더 쏘아댈까 하다가 그래도 낼 떠날 동생인데 심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늘어나긴 했어도 내일부터 신을 구두를 생각하며, 그 기념으로 구두에 맞춰 어떤 옷을 입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드디어 동생의 출국일이 밝았다. 부모님은 공항까지 같이 가자고 부추겼지만 오후에 전공과목 시험이라 나는 갈 수 없었다.
동생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영어 도사가 될 거라는 허풍을 한참 날린 뒤 굿바이를 외치고 떠났다.
온 가족이 공항으로 떠나자 난 베이지 색 면바지를 꺼내 정성껏 다렸다.
연한 스트라이프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진갈색의 내 구두… 이렇게 상상하며 차려입고 현관에 우뚝 선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 있어야 할 내 구두가 없었다. 동생은 평소대로 내 신을 신고 간 것이었다.
대신 그 자리엔 동생의 새 구두가 오롯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내 구두를 신고 갔어!”
이 기막힌 순간을 음미하고 있는데 방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서둘러 받아보니 수화기 너머로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내 구두 우편으로 보내라! 신으면 안돼! 정말 안된다!!!”
난 차분하게, 아무런 대꾸도 없이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날 오후, 난 새 구두를 밟아보겠다고 덤벼드는 놈들을 피해 교정을 얼마나 내달렸는지 모른다.

요새도 매일 집 열쇠를 찾아 헤매는 어머니를 보며 이역만리 호주에서 가정을 꾸미고 사는 동생을 떠올린다.
또 어떤 건망증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당황하게 만들지….
제수씨의 근심은 늘어나겠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수씨가 꼼꼼한 성격이라는 거.
가끔씩 한없이 웃을 수 있을 테니 잘 돌봐주길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바란다.


노요한/작가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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