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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골뜨기 상경기' - 최은진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1-20 조회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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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여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진학을 했지만 친구들은 거의 취업을 해 도시로 나가 한 학기를 마치고 집에 오니 고향에는 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아버지에게 서울에 취직해 있는 친구들을 보러가겠다고 했다. 혼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 가는 것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허락을 받아냈다.
딱 1박 2일,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보고 싶은 친구가 있는 직장을 찾아갔다. 지하철 갈아타는 역을 달달 외워서 물어물어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가리봉동에 있는 삼양라면 공장이었다.

퇴근시간이 되자 예쁜 화장을 하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내 또래의 여자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서울 온다고 그중 괜찮은 옷을 챙겨 신경 써서 입고 왔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서울사람들(?)을 보니 기가 죽었다.
드디어 친구를 만났다. 얼마나 기뻤는지 그 친구는 나를 보고 울었다.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지방전문학교에 진학하긴 했지만 성의없이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나를 그 친구는 직장동료에게 대학생이라고 소개시켰다.
얼마나 쪽팔렸는지 모른다. 그 친구는 맛있는 거 사준다, 선물을 사준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래도 서울인데 분위기 있는 곳에서 우아하게 보내고 싶었지만 공장 가까이에서 밥을 먹고 그냥 친구 자취방으로 가자고 했다.

서울은 화려한 곳으로만 알았던 촌뜨기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겨우 방에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작고 귀여운 집이었다. 그래도 고급화장품에 있을 건 다 있었다.
난 그 방도 부러웠다. 시골 우리 집은 그 큰 집이 다 내꺼였고 내 방도 넓었는데도 그 방과 방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부러웠다.

밤새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마셔보는 맥주 맛에 마냥 흥겨웠다. 그날 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느낌은 지금까지 그대로 살아있다.
다음날 친구는 출근을 위해 부지런히 아침을 맞이했다. 난 아쉬운 이별을 하며 고향 집으로 향했다. 분명 친구의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고 부러웠는데 고향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느낌은 그것과 달랐다.

시끄럽고 복잡한 곳과 멀어질수록 얼마나 편안하고 평화로웠는지 모른다. 그 후로 다시는 서울로 친구 만나러 가겠다고 떼쓰지 않았다.
명절에 친구가 고향에 오면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게 전부였다. 내가 부러워했던 방, 예쁜 소지품, 고급화장품…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

그 순간에는 나도 꼭 갖고 싶은 거였는데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은 건 왜일까? 집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이 소중하고, 내가 쓰는 촌스럽고 낡은 소지품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뭔지는 표현이 어렵지만 그때 깨달은 거였을까? 아직도 난 소박한 것이, 내가 갖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더 좋다. 


최은진/유치원장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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